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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전시회

Più Forte 피우 포르테

완WAN完 2023. 8. 19. 18:26
Più Forte

전시 소개에서 발췌,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는 종종 노래 중간에 무대 앞으로 고개를 숙여 한 마디를 외치곤 했다고 한다.
"Piu Forte! (더 크게!)"
이는 배우가 대사를 잊을 경우를 대비해 무대 아래 마련된 공간에서 얼굴만 내놓은 채 공연 내내 가이드를 주는 프롬프터를 향해 던지는 문장이었다.
//중략 
미술계를 이분법으로 움직이게끔하는 주요한 힘 두 가지가 있다면 자본과 언어(이론, 담론, 가십까지) 일 것이다. 이 둘은 대개 같은 곳에 있지 못하며 서로의 온도를 극단적으로 표출하기에 바쁘다.
거대한 자본이 있는 곳에 담론이 설 자리는 없고 필요한 담론이 있는 곳에 자본은 종종 외면으로 일관한다.
//중략
마리아 칼라스는 이미 오페라계의 스타가 된 이후에도 프롬프터에게 말 걸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극은 멈추지 않을 수 있었고 그녀의 행위는 얄팍한 부끄러움이 아닌 단단한 역사로 기록될 수 있었다. 
//중략


 

  좋은 인연이 이어져 이렇듯 작가님의 초대로 오프닝 리셉션에 가게 됐다. 금요일이라 퇴근 후 귀가길에 경유지를 끼워 넣을 여유가 있었고 마침 퇴근길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선뜻 첫 발을 내디뎠다.  방배동의 한적한 주택가, 한량 고양이도 만났다.
 

한량 고양이

 
 
Melted frozen
유리가 액체로 녹기 위해선 섭씨 1000도의 불이 필요하다. 불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신체적 조건은 그 온도 안에서 유동하는 유리의 조건과 맞지 않아서, 만약 유동하는 유리가 인간이 살아가는 조건에 갑자기 덩그러니 놓여진다면 그 유리는 급속히 얼어붙어 조각조각 나고 만다. 유리에게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란 너무나 차가운 환경인 것이다.
나는 불에 녹아 흘러내리는 유리와 얼어버린 유리를 자주 목격한다. 79년 8월 폼페이에서는 인간이 1000도의 화산쇄설류1)에 덮여 죽었고, 역설적으로 그들이 죽기 일보직전의 상태 그대로 얼어버렸다. 불에 의해 인간이 얼어붙은 이 사건은 내가 목격한 적 없는, 그러나 유리의 시선으로 보자면, 인간이 유리의 조건에 가까워진 순간이다. 내가 '목격하지 않은 것'과 '목격한 것' 사이에 어떤 빈 공간이 있는가. 나는 얼어붙은 유리와 녹아내리는 인간 형상의 얼음을 결합하가로 한다. 인간의 형체가 녹으면서 유러는 형체로부터 떨어져 바스러지고 말 것이다.
Pyroclastic flow
화산쇄설류는 죽기 전 그들이 목격한 마지막 잔상일 것이다. 잔상은 빛을 동반하고 눈을 감았을 때 스스로 빛을 낸다. 이것은 유통하는 유리의 초건이기도 하다. 발광하지 않는 유리는 유동하지 않는다. 유리가 유동할 수 있는 온도의 조건이 인간에게 재앙이 된다면, 발광하는 유리가 내는 빛이 눈에 잔상으로 남을 때 그것은 재앙을 축소하여 눈에 각인시키는 일이다.
나는 여기에 "나는 한계의 궁극이 없는 것을 재앙이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재앙은 그 궁극을 차지해 버리는 것이다."2)라는 모리스 블랑쇼의 글을 인용한다. 한계의 궁극이 없는 것이 재앙이라면, 그것을 축소해 버린 유리는 다시 유동하며 유한한 인간의 눈에 남는다.
Reflection
잔상으로 남은 것은 다시 기억이 된다. 내겐 잊힌 꿈의 장면들이 오래된 기억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현실과 꿈을 가로막는 것은 하나의 막이다. 잠이라는 막. 꿈이 잠을 넘어 존재한다면 여기 놓인 막이 그 역할을 해줄 것이다. 얼어붙어 영영 잠들어버린 인간이 대신 여기 놓여있었으니까. 이 막들은 얼굴이 비춰지는 거울이자,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일종의 유리이다.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나르키소스에게는 사랑이자 재앙이었다. 그러니, 얼어붙은 형상이 모두 녹아버릴 때까지 바라보는 일은 사랑하는 사람의 잠자는 얼굴을 바라보는 일처럼 고요할 것이다. 형상을 가졌던 얼음은 녹아 물이 되고, 결국엔 부서진 유리만이 남게 된다. 이 장면들은 언젠가의 꿈으로, 오래된 기억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유리로부터 시작해 유리로 끝나는 이야기이다.

글로리홀(Hayne Park)

*Bold는 마음에 드는 부분을 기록해놓은 것입니다.
 

Hayne Park 작가의 글 원문

 
지난 몇 개월간 이유가 파생의 파생을 거쳐 뿌리를 내리더니 새로운 신경망이 되었다.  그렇게 이곳 저곳에 곰팡이도 피우고 열매도 맺었다.
읽을거리와 함께하는 전시는 꽤나 오랜만이었다.  지난 5월 모르는 작가의 회화개인전에 들어갔을 적에 읽을거리가 있어 이어폰을 꽂고 읽고 상상하고 음미했던 것이 떠오른다. 전시작가와 친분이 있어 직접적 초대를 통해 가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감상이 사뭇 달랐다.  아는 사람, 아는 이야기, 아는 사람의 모르는 이야기, 어딘가 많은 부분이 오비탈처럼 확률로써 있고 없고를 반복하는 상황. 유명하다면 굴복하고 무명이라면 싸워야 한다. 그러니까 산책로가 좋냐 등산로가 좋냐이다.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이기에 나에게 유명인이다. 등산로를 산책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Pyroclastic flow

 
  사실 불에 의해 얼어버린 인간이라하면 영 말이 되지 않는다. 메두사와 눈을 맞추듯 그렇게 멈춰버린 존재. 그렇다면 작가는 유리에게 메두사일까.
 

Melted frozen

 
  철저히 유리와 인간을 도치시키며 그들의 상반된 운명에 관철한다. 그들의 운명, 그 넘을 수 없는 한계선. 그 선을 이루는 압축된 재앙 마지막으로 그들이 이루고 있는 면 그리고 그것이 막.  그래, 그렇게 사랑을 느낀다. 

Reflection

 
  바라볼 수 밖에 없지만 넘어가지 않으려, 넘어가 너와 나의 운명을 거스를 바에 녹아 없어지겠다는 결심.  그렇게 조각난 기억은 영면에 든다.
에리히 프롬이 분류한 다섯가지 사랑 중 언급되지 않은 사랑을 보았다. 어쩌면 자기애에 포함될지도 모르겠다. 예수는 인간을 사랑하셨다. 바흐는 선율을 사랑했을까.  그랬을 것이다.
작가님의 마지막 문장에서 나는 또 어김없이 사랑느낀다.
 

이 모든 것은 유리로부터 시작해 유리로 끝나는 이야기이다.
글로리홀(Hayne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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